테일즈 오브

Tales of 20th Anniversary 테일즈 오브 도감 1995-2016 / 테일즈 오브 제스티리아 - 라일라 부분

감콩 2021. 5. 22. 18:23

 

후회했던 과거를 다시 한 번 구실 삼아

 


그날, 앳된 얼굴에 빛나던, 용담과 같은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오래된 관습 하에 계약을 나눈 소년은, 이 대륙에 천족을 향한 신앙을 되돌리겠다며, 그것만을 바라고서 도사가 되었다. 도사는 평생에 걸쳐 가족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초자연적인 힘을 향한 경외 탓에 육친과의 관계도 희박하다. 겨우 열 살을 조금 넘겼을 뿐인 어린 나이에, 소년은 이미 많은 것을 버릴 각오를 정했다. 이윽고 그는 여행 중 나이를 먹고, 사려 싶은 청년이 되어 이끼 낀 유적과 대지가 깎인 절벽에, 신인 천족에게 바치는 신앙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천족이 잊혀진 세계에서, 어디에도 옛 기도를 받아들이는 장소도 사람도 없다. 낡은 위광을 등에 업듯이 쌓여 있던, 외견 뿐인 장식과, 의미따위 이미 텅 비어버린 교회에서 그럼에도 도사 미켈은 빈 껍데기 같은 제단 너머에 마오테라스를 찾아내고서, 울었다.

 

 

 

 



도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받아 들인 것이 자신이라면, 도사여야 한다는 중압을 건 것도 자신이었다. 지지하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어깨에 짐을 늘리고, 인도하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답을 제시할 뿐이 되어 있었다. 그가 지팡이 대신 손에 든 칼자국은, 점차 깊숙히 대지를 파고 들고, 계속 끊기며, 마지막 땅에서 다한다. 아주 적게 남은 사람의 양심에 긴 여생을 바치겠다 정하고서, 마오테라스를 지킬 엄숙한 성역을 만든 그의 마음은, 그 반생을 성실하게 잇대면서도, 분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까지 몰렸던 것이다. 은퇴한 도사를 따르고, 마오테라스를 받들어 캄란에서의 청빈한 삶을 선택한 한 줌의 동포만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만 한다. 연면히 계속되는 도사의 숙명을 엿본 사람이라면 도망칠 수 없는, 그런 업에 얽매여서.

 

 

신을 부정으로 떨어트리고, 죄 없는 약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어리석은 남자를 향한 공물을. 그 누구도 아닌, 그 남자의 야망에 희생된, 피를 나눈 어린 생명을 공물로, 고개를 든 저주는 도사까지 덮치고서ㅡㅡ미켈은 저주에 먹혀 역사에서 사라졌다. 잊혀져 버린 도사의 비극을, 주신의 잘못이라고 들이대듯이.


새로운 소년을 그릇으로 맞이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 것인가. 만물을 태워 대지에 되돌리는 불의 가호를, 부정을 태우는 정화의 불꽃으로 바꾸는 교만이, 다시 용서될 수 있는 것인가. 미혹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그를 인도하기로 정했다. 설령 과오의 업화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더라도, 이번에야말로 도사를 끝까지 지지해 보이겠다. 머나먼 날에 소년의 곁에서 본 꿈은, 과거라는 이름의 굴레에 갇힌 환상이 아닌, 하늘을 향해 내걸린 검의 빛이 되어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