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 이문 『진명 ~true name』 제2장 · 사역 성례들
제2장 사역 성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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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인간 사회에 성례들이 모습을 드러낸 《강림의 날》로부터 며칠 후.
왕도에 있는 성료 본부──로그레스 별궁의 무거운 문이 튕기듯한 기세로 열렸다.
"기다리게 했군, 아르토리우스."
맹호와 같은 살기를 내뿜으며, 특등대마사 시구레 란게츠는 키만큼 큰 거대한 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베러 달려들었다. 아르토리우스는 왼손으로 검을 뽑아, 태연하게 시구레의 호검을 받는다. 검과 검, 기와 기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예배당의 창문을 떨게 했다.
"잘 와주었군, 시구레."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검을 내리고서 검집에 넣었다.
"아직 오른손은 못 움직이는 건가."
"보는 그대로다."
망토에 숨겨진 아르토리우스의 오른팔 너머로, 시구레는 수염 난 대마사와 가면을 쓴 성례를 노려본다.
"멜키오르, 시어리즈,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카무이》를 완성시키는 것보다 아르토리우스의 팔을 낫게 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빠르지 않겠냐?"
아르토리우스와의 대결을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검사가, 《카무이》가 완성되면 오른팔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고 들은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이야기다. 계획을 하루라도 더 빠르게 실행하기 위해서, 하루라도 더 빠르게 최강의 남자<아르토리우스>와 싸우기 위해, 시구레는 성료에 협력을 약속했다. 그런데도.
"《지크프리트》는 그 장소를 파악하고 있다. 입수하는대로 《카무이》는 완성된다."
멜키오르의 말에 적은 조바심과 초조함이 묻어 나온다.
"저의 《서약술<브륜힐데>》도, 얼마 안 남은 상태까지 온 상황입니다."
가면을 쓴 성례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그럼 빨리 완성 시켜 달라고......응? 저기 쪼끄만한 건 뭐냐?"
시구레는 시어리즈의 뒷편에 작은 소년 성례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너, 전에도 만난 적 있잖아?"
시구레의 몸에서 커다란 하얀 고양이 성례가 빠져나와, 소년 성례의 눈앞에 섰다.
"이 아이는, 시어리즈와 함께 전생한 아르토리우스의 아이야."
"아아, 그런 일도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 안 나는구만. 이름은?"
의지가 억제당해, 반응이 없는 소년을 대신해, 아르토리우스가 답한다.
"이름은 없다."
"어째서?"
"《진명》은 계약할 때에 주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와 계약하지 않은 것을 아르토리우스는 알렸다.
"제 아무리 너라도 아내와 아이 둘 다를 세계를 위해 바칠 수는 없었나. 하하하하핫."
악의는 없으나 용서도 없는 말에도, 아르토리우스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는다.
"부모로서, 이름 정도는 붙여주는 게 어떠냐? 진명이 아니라도, 부를 이름은 필요하잖냐. 이 무르짐도 호랑이 눈썹이라는 이상한 진명조차, 마음에 들어한다고?"
"너무하네. 『좋은 이름이다』라고 시구레가 말해줬으니까, 콤플렉스였던 《류딘=메큐어=세프》라는 진명도, 이 눈썹도 좋아지게 된 거라구."
무르짐은 애달픈 듯 꼬리를 내렸다.
"오, 좋은 이상한 이름이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니까 말이지."
"그건 사자잖아?"
"아니, 확실하게 호랑이 쪽이 강하잖냐!"
"이제 됐어...... 아르토리우스님도 어이없어 하고 계시고──"
그런가, 하고 시구레는 아르토리우스를 돌아본다.
"계약하는 대마사가 주면 된다."
그 말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너는 괜찮냐, 시어리즈?"
"아르토리우스님이 정하시는 일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정하려 하지 않는 아비와 어미. 하지만 주어지는 이름따위, 아무래도 좋다. 가지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스스로 빼앗으면 되니까. 그것이 란게츠 남자다. 시구레는 이름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다.
"그치만 이 성례<아이>에게는 강한 잠재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의지를 해방하고서 계약하는 건, 계획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무르짐은 소년이 내포한 강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아르토리우스님도 파악하고 계시지만, 제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커다란 방해가 됩니다."
"《카무이》 완성까지는 다른 대마사에게 맡기게 되겠지."
"수양 아들이라는 거군."
시어리즈는 "그것이 《이치》입니다......"라고 끄덕인 후에.
"아뇨...... 시구레님, 이 성례는 《아서》의 아이. 아르토리우스님의 물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서 시구레는 씨익 웃는다.
"좋군, 시어리즈. 가면에 숨겨져 있지만, 넌 꽤나 좋은 나쁜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 아니, 좋은 나쁜 어미의 얼굴이다──"
시어리즈의 필사적인 감정이 마음에 든 시구레는 노골적인 말을 아서였던 남자에게 부딪쳤다. 하지만 아르토리우스・콜브랜드의 표정은 일절 바뀌지 않았다. 그 얼굴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 소년 성례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시어리즈이 작은 반린 이후 1년 정도가 지났다.
성례 본부의 한 방에서 멜키오르가 신인 대마사와 마주하고 있었다.
"어째서 주어진 성례들과 계약을 하지 않는 거지, 테레사・리나레스?"
특등대마사의 말에는 명확한 질책의 뜻이 담겨져 있었다.
"어째서 저런 아이들을...... 진의를 알려주세요."
테레사는 자신의 방에 남기고 온 두 개의 《사역 성례<아이들>》──금색의 칼단발과 촉각과 같이 튀는 머리카락이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금발──를 떠올린다. 《은》은 방 한쪽 구석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서 있고, 《금》은 어디선가 가져온 책을 묵묵히 읽을 뿐이다. 꼭두각시와 같은 그것과 계약하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 이익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다. 짜증과 한숨을 겸해, 작게 숨을 토한다.
"성례에겐 어른과 아이, 동물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닌 것이 있고, 그 각자에게 특성이 있다. 능력은 외모에 준하지 않는다고 강의했을 것이다. 아이 돌보기라도 명령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외람되지만, 그것들에겐 근접 전투 능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흉폭한 업마나 드래곤을 쓰러트리기에는 조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에게 업마나 드래곤 퇴치를 명했나? 성료<여기>는 공훈을 세워 출세를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나의 오스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적을 치고, 지키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로 넘버인 일등대마사로서."
누나로서.
"너는 《누구》를 지킬 생각이지?"
"어......"
"제로 넘버를 자각하고 있다면, 《이치》의 앞에 《개개》의 얕은 생각을 꺼내서, 나를 실망 시키지 마라."
멜키오르는 테레사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손에 든 고문서를 펼쳤다.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실례했습니다."
마음을 통찰 당해, 수치심에 붉어지는 얼굴을 숙인 채, 테레사는 그 자리를 뒤로 했다.
테레사가 방으로 돌아오니, 《금》의 성례가 사라져 있었다.
"의지가 없는 성례가, 어째서......! 그건 어디로 간 겁니까?"
《은》에게 물어도 "모르겠습니다, 테레사님"이라고 억양이 없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도구에게 대답을 바란 자신에게 더욱 짜증을 느끼며, 테레사는 《금》을 찾으러 방을 뛰쳐 나갔다.
왕성 다음으로 넓은 성료 본부는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기에는 너무 넓다. 종종걸음으로 수색하고서 약 1시간. 안뜰도 찾아 다녔지만 《금》은 보이지 않는다. 성례는 평범하게는 다치거나 죽지는 않을 거였지만, 혹시나 잃는 일이 생긴다면 멜키오르의 신용 뿐만 아니라, 대마사의 자격을 박탈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가족인 오스카도 창피를 당하고 만다. 오스카가 그런 일로 화를 내지 않을 것이고, 주위의 눈을 신경 쓰지도 않겠지만──배다른 누나를 마음 속으로부터 걱정하여, 테레사 이상으로 슬퍼하겠지.
그 아이<오스카>의 미소를 빼앗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무엇보다도 내가.
아니, 무엇보다──나는 계속 일등마도사로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아이의 곁에서 그 아이를 계속 지켜야만 하니까.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테레사는 떠올렸다. 어렸을 적 숨바꼭질을 하던 중 오스카가 사라져 버린 적이 있었다. 4살짜리 동생이 즐겨 숨는 곳은 오래된 도구가 모인 창고. 평소라면 바로 찾을 수 있었는데, 그 날은 아무리 찾아 다녀도 찾질 못했다. 동생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긴 건 아닐까, 눈물 섞인 목소리로 외쳤을 때, "누님~"이라고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 발밑의 장판이 움직였다.
"지하실의 숨겨진 문......"
문득 그 자리에 주저 앉은 테레사의 눈앞에, 먼지 탓에 새카매진 동생의 미소가 날아왔다.
"그 성례, 소중한 듯이 책을 들고 있었죠."
테레사는 도서실로 향했다. 방대한 서적을 소장한 도서실에는, 지하 서고가 있다. 저번에 둘러 봤을 때에는 서고에 불빛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문을 닫아버렸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닌, 성례다. 어두운 상태에서 책을 읽어도 이상하지 않다. 촛대에 불을 붙이고서, 지하를 비추니──《금》의 성례가 있었다.
"테레사님......"
《금》이 있던 책상 위에는 한 권의 두꺼운 신화 사전이 펼쳐져 있고, 그 주위에는 몇 개의 잡동사니가 즐비해 있었다.
"뭘 하고 있었나요?"
"......책에는, 다양한 것이 적혀 있습니다......"
"그게...... 뭐가?"
"많은 그림과 말이 적혀 있습니다."
"......물건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 네. 《이름》이 잔뜩 적혀 있습니다. 이건 《카레기아의 성수》입니다."
아이 성례는 반인반수의 나무 조각 인형을 가리켰다.
"저 고양이는...... 《테네브라에》...... 저 검은 《샤르티에》......"
잡동사니를 계속 설명하는 《금》의 말에는, 억양이 없다. 의지가 봉인되어 있을 것인데, 멋대로 방을 나가고, 도감을 열고서 물건의 이름을 조사한다──그런 성례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응에 응한 테레사는 촛불에 흔들리는 《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름은──《이세계의 기사 지란드》."
그래, 지란드──기사의 인형을, 테레사는 알고 있었다.
"이건...... 금입니다. 무척, 무겁습니다......"
"이건......《유우마시의 일각수<유니콘>》이군요."
"네, 테레사님."
숨바꼭질 사건 날, 고도구 창고 지하에서 그을림 투성이가 되어 나온 오스카가 들고 있던 것도, 기사<지란드>와 일각수<유니콘> 장난감이었다. 아이 성례들의 머리 모양이, 인형에 겹쳐진다.
"오스카를 위한 장난감이라 생각하면, 아 아이들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은빛 기사》와 《금빛 일각수》──계약 시에 줄 《진명》도 정해졌다.
도감과 잡동사니를 안고서 방으로 돌아온 《금》에게, 테레사는 방에 있던 마우리츠로 짠 배낭을 줬다.
"잘 정리하는 겁니다."
"네...... 테레사님."
빛이 없는 눈으로 《금》은 대답했다.
(기뻐하지 않는군요...... 그 날, 오스카에게 가방을 줬을 때는, 무척 기뻐했는데......)
직후 테레사는 "내가 무슨!" 이라고 외쳤다. 벽 쪽의 《은》과 눈앞의 《금》은 동시에 고개를 올려, 테레사를 바라본다. 그 표정에는 겁조차 없었다.
불쾌한 땀이 뺨에 떠오른다. 《금》의 무뚝뚝한 반응에 낙담을 느낀 자신. 성례<도구>에게 필요없는 《정》을 안기 시작한 자신. 그 모습이 《은빛 기사》이며, 《금빛 일각수》라는 것을 깨달은, 놀라움과 분노.
"──여기에 서세요."
테레사는 두 개의 성례를 부른다.
"《이치》의 앞에 바쳐진 자들이여. 지금 맹약의 계약을 나누고, 나의 혁혁한 진의, 청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라."
테레사는 《은》에게.
"기억하라, 그대에게 주어지는 《진명》을──보르듀=이브."
이어서 《금》에게.
"기억하라, 그대에게 주어지는 《진명》을──보르듀=스니."
""네, 테레사님......"
《1호》, 《2호》라는 의미도 없는 이름이 주어진 두 개의 성례<도구>는, 함께 대답을 했다.
거기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스카가 들어왔다.
"오스카, 무슨 일인가요?"
"아까 전에 누님이 성례에 관해서 멜키오르님에게 직접 담판을 지으러 향했다는 것을 듣고서, 걱정이 되어서──"
그 표정, 행동. 자신의 일과 같이 누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상냥한 동생. 저 너머에 서 있는 성례 따위와 비교를 하는 것조차 역겹다.
"괜찮아요. 무사히 계약했습니다."
"진명은?"
"은이 《1호》, 금이 《2호》."
"누님답군요. 상쾌할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어요."
이걸로 됐어──테레사는 생각했다.
이름따위에 의미는 없다. 드래고니아가 아닌 리나레스라고 해도, 자신이 오스카의 누나인 것과 같이. 어떤 이름을 부여하더라도,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성료의 정점에 향할 가장 사랑하는 동생 오스카를 지지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것을 쓸 뿐이다.
그렇다──아이 돌보기를 명령 당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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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금과 테레사가 언급하는 것들은 각각
・ [카레기아] -> 테일즈 오브 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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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르티에] ->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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