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즈 오브

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 이문 『진명 ~true name』 제4장 · 약속

감콩 2024. 12. 26. 17:19



제4장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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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의 숲』의 잠자는 공주           천 년 꿈을 꾸는 잠자는 공주
흐르는 머리카락은 에메랄드                부끄러워하는 뺨은 장미수정
반짝이는 별을 가슴에 안고                  계속 계속 꿈을 꾼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화,
잔이 두 개. 비취 술에 떠오르는 얼음이 연분홍빛을 띄며 녹아간다. 서로 마시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고 하는 술 『가시나무의 숲』. 스톤베리 주점에서, 바람의 성례 자비다가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잔을 겹친 그 녀석──연인, 테오도라.





5년 전──인간 마을에서 떨어진 고원에 작은 집이 있었다. 약간 해가 기울어진 한낮이 되어, 그 집에 찾아온 자가 있었다. 집의 주인・성례 테오도라가 문을 여니, 거기에는 늑대와 같은 눈을 한 은색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여어......"

얼굴은 상처투성이. 검은 가죽 수트는 엉망진창이고.

"자비다!"
"돌아왔어, 테오도라."

힐쭉 웃는 자비다는 테오도라에게 덮어 씌워졌다. 넓은 어깨가, 괴로운 듯 올랐다 내렸다 한다..

"또 싸웠어?! 이제 안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하핫...... 아무래도 세계라는 건 내게 약속을 깨트리게 하기 위해...... 도는 것 같구만......"
"웃지도 못할 농담을...... 앗!"

 테오도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비다의 등에 있던 세 명. 아직 4, 5세 정도의 인간 아이들이다. 모두가 눈에 빛이 없었다.

"듀라한에게...... 부모를 살해 당했어......"

자비다는 테오도라에게 속삭였다. 근처 고개에서 업마에게 습격 당하고 있는 것을, 자비다가 구했다. 그 업마와의 싸움에서 자비다는 중상을 입은 것이었다.

"정말...... 곤란한 세계네."

테오도라는 자비다를 근처 의자에 앉히고서 회복술을 걸고는, 아이들을 방에 들였다.





"얘, 너희들, 이름이 뭐니?"

붉은 머리와 검정 머리 소년 두 명에, 약한 연하인 듯한 소녀. 한명 씩 눈을 보면서 테오도라가 불렀으나,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부모를 눈앞에서 살해당해 마음을 닫은 아이들의 슬픔은 깊었다.

"이 녀석들 하루 이상 계속 이래...... 먹을 거에도 손을 대질 않아."

자비다는 포기했다고, 한숨을 쉰다.

"배, 안 고프니? 좋아하는 음식이 뭐니?"

테오도라는 소년들의 손을 잡았다. 영응력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자비다와 같이 테오도라의 모습도 뚜렷하게 보였다.

"킷슈? 푸딩?"

다양한 요리의 이름을 올려, 테오도라가 근성 있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서, 자비다도 소녀의 손을 슬쩍 잡는다. 따뜻한 방 안인데도, 그 손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하지만 그 손이 점차적으로 온기를 늘려간다.

"아니면...... 피치 파이라던가?"

그때──꼬르륵. 여자아이의 배가 울렸다. 따라오듯이 소년들의 배도 울렸다. 아이들이 잡는 힘이, 조금이지만 강해졌다.

"살아갈 의지를 잃지 않았나 보네, 이 아이들의 몸은."

테오도라는 기쁜 듯이 끄덕였다.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예전만큼은 맛을 모르는데."
"테오도라......"

자비다는 그녀의 미각이 둔해진 이유를 생각하며, 순간 얼굴을 찌푸리지만, 바로 웃으며.

"나한테 맡기라고."





인간의 요리를 위해, 자비다는 마을로 나왔다. 성례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죽지는 않으나, 맛은 알 수 있다. 맛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저녁 식사 전의 분주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자, 바람이여 알려줘...... 그 아이들이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밥의 냄새를."

이윽고 자비다의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이 있었다.

"오, 이건 당첨이군."

보니 거기에는 부부라 생각되는 남녀가 포장마차 가게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나 맛있어 보이는 냄새를 하고 있는데, 꽤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구만......"
"어서 오세요."
"곧 준비가 되니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오? 너희들, 내가 보이는 건가. 그럼 이야기가 빠르지."

의미를 모르는 채 멍하니 있는 두 사람에게,

"얼굴 좀 빌리겠어."

자비다는 바람의 성례술을 써서, 포장마차와 함께 부부를 데리고서 산으로 향했다.





"......그런 거였구나."

테오도라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서, 아이들의 얼굴을 본 포장마차 주인 벤은 슬픈 듯이 아이들을 바라봤다. 정말로 죄송하다고, 테오도라는 사과한다.

"──맡겨달라니......어째서 가게를 통째로 옮겨 온 거야?"
"하핫, 어차피 먹는다면 갓 먹는 게 제일 맛있잖냐?"

어이 없어 하는 테오도라와 자비다의 대화를, 멍하니 보고 있던 아내 사리프였으나,

"그러네...... 따뜻한 밥은, 마음을 데워주니까."

응응하고 자신을 설득하듯 끄덕이며, 에이프런의 끈을 멨다.

".....벤."
"아아...... 하자, 사리프! 실력을 더욱 넣어서, 이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먹게 해주자고! 자비다, 테오도라 씨, 의자 가지고서 아이들을 포장마차 앞에 데리고 와줘!"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마차에서 따뜻하고 맛있어 보이는 김과 기름의 향기가 올라왔다.

"오래 기다렸지!" "모두, 먹으렴!"

눈앞에 늘어선 것은, 마파 두부, 토마토 소스 파스타, 피치 파이. 아이들의 손이 자연스럽게 뻗었다. 한 입, 또 한 입 볼을 채우니, 눈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어떠냐, 특제 마파 두부는? 지금은 로그레스에서 주점을 하고 있는 동료랑 같이 개발한 거다."
"맛있지만...... 매웟!"

마파 두부를 먹고 있던 검정 머리 소년이 컵에 있는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하핫, 아벨은 어리구나! 난 전혀 괜찮은데."
"시끄러, 버드! 네가 피치 파이 먹은 걸 숨긴 거 다 알고 있다고!"

아벨은 붉은 머리의 버드에게 반박한다.

"둘 다, 못 났어! 후는 마파 카레도 토마토 소스 파스타도 괜찮은 걸! 파치 파이는 디저트로 남겨두고 있거든."

새침한 얼굴로 연상 소년들에게 욕을 하는 소녀 후를 보고서, 부부도 성례들도 웃었다.

"잘 먹었습니다!"

기운을 차린 아이들의 모습에, 벤과 사리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가족 같구만."

문득 중얼거린 자비다의 말이 부부의 표정을 굳혔다.

"......그러게...... 가족, 같네......"

사리프의 뺨에 눈물이 전해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죄송해요, 이런 즐거운 저녁 식사...... 오랜만이라......"
"실은...... 저희 아이들도...... 업마에게...... 만일, 건강했다면...... 하고."

벤도 코를 훌쩍이며 꾹 참는다.

"그런가...... 그러니까 너희들, 처음에 만났을 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군."
"전부...... 업마가 나쁜 거야!"

아벨이 주먹으로 무릎을 두들겼다. 그 눈에서 굵은 눈방울이 흘러 내렸다.

"자비다 형...... 나, 복수를 하고 싶어!"
"나도...... 그 업마를 해치우고 싶어......!" "후도......"

버드도, 후도 울기 시작했다.

"그건 무리군."
"어째서!"
"──내가 날려 버릴 거니까."

자비다의 눈에 싸움꾼의 불이 켜진다.

"당했다면 되돌려준다. 그게 내 《방식》이다."





그날 밤 외출한 자비다는 업마 듀라한을 쓰러트리고서, 돌아왔다. 기다리면서 안 자고 있던 아이들의 졸린 얼굴에, 원수는 갚았다고 자비다는 전했다.

"고마워...... 자비다."
"싸움 안 하겠다는 약속을 깼는데, 감사 인사를 말해도 되냐?"
"오늘은 봐줄게. 벤과 사리프는 정기적으로 와주기로 했고, 앞으로는 또 떠들썩해지겠네."

기쁜 듯한 말과는 반대로, 테오도라의 얼굴색은 맑아지지 않는다.

"테오도라...... 너, 괜찮냐?"
"뭐가......?"
"맛을 알 수 없게 된 것도, 그 얼굴색도......《부정》 탓이잖냐."

자비다와 만나기 훨씬 전부터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계속 돌보던 테오도라는, 인간이 내는 《부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앞에 기다리는 절망을, 자비다도 테오도라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둬도 되지 않냐?"
"내가 그만 둔다고 하면, 너도 싸움을 그만할 거야?"
"내가 그만 둔다고 하면, 넌 인간과 지내는 걸 그만할 거냐?"
"안 그만 둘 거야──그게, 내 《방식》인 걸."





자비다는 여행을 떠났다──테오도라의 《부정》을 지울 방법을 찾기 위해서. 테오도라와 아이들의 상태를 보러 얼굴을 보이고는, 다시 나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물론 자비다의 싸움은 끊이질 않고, 그때마다 《약속》은 깨졌다.





그리고, 1년 후.

몇 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 자비다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다쳐 있었다.

"......성례에게 명령해서, 술기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니...... 대마사하고 싸웠어?"
"어, 무슨 일인지, 대마사 견습생 같은 놈들이 늘어나서...... 마음에 안 드니까 패줬지...... 아얏......"
"여전하네......"
"그것보다 오늘은 선물이 있어."

자비다는 가지고 온 짐 속에서 『가시나무의 숲』이라는 이름의 푸른 술을 꺼내 들었다.





산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그친 깊은 밤, 자비다와 테오도라는 『가시나무의 숲』을 함께 마시고 있었다.

"후우...... 역시 이 집이 진정되는구만...... 언제나 봄처럼 따뜻하고, 마음이 편해져......"
"당연하잖아?"

응, 하고 한 쪽 어깨를 올린 자비다에게,

"퀴브듀크스=스이지아......《봄바람의 테오도라》의 집인 걸."

테오도라는 스스로의 《진명》을 밝혔다.

"테오도라...... 너......"

처음으로 《진명》을 전해 듣고서, 붉게 물든 자비다의 귓가에 테오도라가 중얼거린다.

"있잖아..... 무턱댄 싸움은, 이제 안 하겠다고 약속해줘."
"그래, 약속이야."
"이걸로 몇 번째인지."
"이번엔 지키지. 이렇게 보여도 내 진명은──"

테오도라는 잔을 들고서, 자비다의 잔에 겹쳤다.





다음날, 테오도라는 모습을 지웠다.

아침 식사용 과일을 찾으러 나간 채 정오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근처를 찾아도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비다는 벤과 사이프에게 아이들을 맡기고서 수색의 여행을 떠났다.

《부정》에 의한 드래곤화의 징조를 느낀 테오도라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떠난 게 아닐까, 자비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상은 달랐다.

틴타젤──드래곤을 신으로 숭배하는 컬트 교단. 《개문의 날》에 모습을 지웠다고 하는 사교도가 테오도라를 납치했다고 한다. 로그레스의 주점에서 노파가 꺼낸 편지에는 틴타젤의 잠복처와 피와 같이 붉은 《나비》가 적혀 있었다.





이스트간드 끝의 폐촌.

"테오도라...... 데리러 왔어."

낡은 성주 교회에 걸린 사교의 문장을, 자비다는 문짝과 함께 걷어찼다. 안에서 거센 파도와 같이 흘러 나온 《부정》이 싸움꾼의 몸을 태운다. 되돌아선 사교도들 너머, 불길한 제단에 테오도라가 바쳐져 있었다.

"이런 썩을 곳에, 테오도라를 가두다니!"

분노가 자비다를 재촉한다.

"자비다......"

테오도라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미안해..... 또 약속을 깰 것 같아."

연인의 곁으로 달려가는 성례에게, 틴타젤 놈들이 달려든다. 《부정》을 바라며, 외치고, 순식간에 업마로 모습을 바꾸고서.

"업마<괴물> 놈들이! 신<드래곤>따위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싸그리 지옥으로 처 떨어져라!"

교차한 양손에서 발한 팬듈럼이 업마 무리를 습격한다. 죄고, 베고, 쳐부순다. 끔찍한 단말마의 외침이, 마굴이 된 교회를 떨게 한다.

이 싸움만은 질 수 없다. 압도적인 힘과 기술로, 자비다는 사교도를 걷어찼다. 하지만──계속 싸우기에는 그곳은 너무나도 부정이 깊었다.

"그아아아아아앗──!!"

《부정》 탓에 움직임이 둔해진 자비다를 덮은 업마들이 싸움꾼의 팔을 다리를 붙잡는다.

"도망쳐...... 도망쳐줘어어엇!! 테오도라아아아아──!!"

자비다가 있는 힘껏 쥐어 짜, 연인의 이름을 부른다.

"자비다───!!"

기절 직전인 자비다에게, 테오도라의 절규가 닿는다.

찰나.

테오도라의 등에서 검은 부정의 날개가 펼쳐졌다.

"오오, 드래곤이여......!!"

사교도들이 그 모습에 매료된 듯이 움직임을 멈추고, 무릎을 꿇는다. 

동시에 드래곤의 날개가 칠흑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앗......!!"

테오도라는 사교도 업마들을 전부 죽였다. 업마의 뼈는 교회와 함께 쓸려 사라지고, 남은 건 자비다와 제단 뿐.

"테오도라......!!"

힘을 다 써서 비틀거리는 테오도라를, 자비다는 껴안았다.

"......자비다......나......죽여, 버렸어......"

목소리를 쥐어 짜낸 테오도라의 몸이 드래곤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몰살로 테오도라는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바보가...... 나한테는 언제나, 싸우지 말라고...... 말한 주제에......"
"미안, 해...... 이만...... 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널 두고 갈 리가 없잖냐!"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전신에서 《부정》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포기 하지 마!! 반드시 내가 널 구할 거야......"
"그 약속...... 이번에는 지켜줄 거야......?"

검게 칠해져가는 의식의 구석에서, 평소와 같이 장난을 치는 테오도라가 있었다.

"지금까지, 약속을 깨기만 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키겠어."

자비다는 테오도라의 손을 잡고서, 바라본다.

"피루크=자데야......《약속의 자비다》의 진명을 걸고서."

있는 그대로의 말. 남자의 맹세를, 여자는 봄바람처럼 웃으며 받아들여──《하얀 뿔》을 지닌 드래곤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후, 자비다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연인을 구할 여행을.





그리고 지금, 자비다는 테오도라를 노리는 검은 해적들과 대치하고 있다.

"나는, 하얀 뿔의 드래곤을...... 죽이겠다."

하얀 뿔의 드래곤의 심장을 먹으면 《사신의 저주》를 풀 수 있다고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저주》를 받아 들이고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테오도라를 죽이는 것에 집착하는 건가, 자비다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싸움꾼을 더욱 짜증나게 했다.

하지만 이유따위 관계없다.

"......드래곤이라고 하지 마라."

그 녀석은.
봄바람처럼 상냥하게.
가장 사랑하는 여자<사람>의 《진명》을 가슴에.

"그 녀석은, 테오도라다. 드래곤이 아냐."

약속을 지킨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