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즈 오브

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 이문 『진명 ~true name』 제5장 · 푸른 하늘

감콩 2024. 12. 26. 18:28



제5장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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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의 달이 왕궁을 비춘 《강림의 날》로부터, 3년이 지났다.

로그레스 교외에 건설 중인 《성주의 옥좌》는 곧 완성 예정이다. 내부의 장인들이 작업을 끝내고서 철수한 황혼, 아르토리우스와 멜키오르가 옥좌에 시찰하러 나왔다.

"이 옥좌의 바로 아래에 미드간드 최대의 지맥점이 있다."
"아아, 느껴지는군. 《카노누시》의 맥박이 올라가고 있다──"

아르토리우스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식마 수집은 진행되고 있는가?"
"《탐욕》, 《오만》, 《애욕》, 《집착》, 《도피》, 《이기》...... 여섯은 그럭저럭 준비를 마쳤다.  문제는 《증오》와 《절망》──"
"타이타니아의 식마는 아직 《순수한 부정》을 낳지 않는 건가."
"역시 하나의 식마에게서 두 개의 부정을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군."

멜키오르는 외안경을 올리고서, 눈을 감았다.

"실례지만, 멜키오르님──"

아르토리우스의 옆에서 성례 시어리즈가 소리도 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벨벳은 믿고 있던 형부에게 동생을 살해 당하고, 그 자신은 왼손을 베이고 없어져, 이형의 괴물로 바뀌었습니다...... 만일 탈옥한다고 해도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는 고독함이 기다릴 뿐. 그 여자가 지금 마음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이대로 손을 내미는 자가 없다면──"

시어리즈는 아르토리우스를 곁눈질로 쳐다보지만, 그 표정에 변화는 없다.

"──끊이지 않는 《증오》와, 바닥이 없는 《절망》이 벨벳의 안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성례의 메마른 말에 아르토리우스를 향한 반발이 숨어 있음을, 노련한 대마사는 놓치지 않는다.

"시어리즈, 평소와는 달리 수다스럽군. 성례에게 견해따위 바라지 않는다. 너는 내가 명한 《술식 연구》만을 해라. 들어가라──"

인사하고서 나가려고 하는 성례에게, 아르토리우스는 시선을 향했다.

"시어리즈...... 새는 왜 난다고 생각하지?"

그 물음에 시어리즈는 가면을 벗고서, 자신의 주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새는 날아야만 합니다. 강한 날개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이상을 위한 날개》를 날개짓하며, 날아야만 하지."
"──네."
"타이타니아의 식마는, 《이치》에 바치는 제물이다. 벨벳은, 이제 없다."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사》가 되는 남자가 목표로 하는 《이치》의 세계에는, 《정》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실례합니다."

시어리즈는 가면을 다시 쓰고서, 옥좌를 뒤로 했다.





며칠 후──이스트간드령의 폐촌에 시어리즈는 발을 옮겼다. 3년 전의 《강림의 날》에 파괴된 아발 마을. 과거 아르토리우스와 벨벳 가족이 지냈던 고향은, 길조차 잡초로 숨겨질 정도로 험해지고, 집은 무너져 있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푸른 하늘 뿐.

그럼에도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시어리즈는 주인을 잃은 집 옆에 있는, 가족의 묘지로 향했다. 크라우 부부의 비석 옆에는, 10년 전 업마에 의해 참살된 세리카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그녀의 아들을 위한 작은 묘. 탄생의 울음조차 내지 못했던 이름 없는 자신의 아이에게, 아서는 맹세를 세웠다.



『이 작은 생명을 위해, 《이상의 날개》는 하늘로 날개짓한다』



비석에 새겨진 아서의 슬픔이 시어리즈의 가슴을 쥔다.

"이상의 날개──"

올려다 보니 폐촌의 하늘에 작은 새가 춤추고 있었다. 세리카로서 아서와 갓 만났을 때, 함께 올려다 본 하늘에도 날개는 날개짓하고 있었다.



"새는 왜 난다고 생각해?"

둘이서 우리보어 사냥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진정의 사당》 앞에서 아서가 세리카에게 물었다.

"후훗...... 이상하고 어려운 걸 생각하고 있구나, 당신은."
"이상하고, 어려워......?"
"그런 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 어렸을 적, 그런 식으로 날고 싶다고, 양손으로 널빤지를 들고서 지붕 위를 뛰어 올라간 적은 있지만."
"어......그런 짓을 하면......"
"아팠지..... 발을 삐끗해서, 잔뜩 부어버려서...... 아빠에게 엄청 혼났어."

그리운 듯이 말하는 세리카의 옆모습.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세리카는 슥 입을 오므리고서, 삐익─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니 날아온 작은 새가 불리운 것처럼 세리카의 곁에 내려 와, 손바닥에서 멈췄다.

"얘, 너는 어째서 나니?"

물어보는 세리카에게 파랑새는 짹짹하고 울음소리를 낸다.

"뭐, 비밀? 후후후훗. 새만의 비밀이구나."
"너는...... 새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거니?"

진심으로 놀라는 아서에게 세리카는 "비밀"이라고 흐림없이 웃으며, 새를 하늘로 돌려보낸다.

"언젠가 새가 되어, 함께 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때 어째서 새가 나는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날아가는 파랑새를 바라보는 세리카의 옆모습이 눈부셨다. 대마사로서 한계를 느끼고서, 괴로워 하고 있던 아서의 마음이 문득 가벼워졌다.

"그러면 좋겠다."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웃는 아서에게, "처음으로 웃었네."라며 세리카는 또 웃었다.





그 10년 후──같은 곳에서, 아서는 전했다.

"『새는 어째서 나는가?』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벨벳."
"아......서......"

사랑하는 남자의 냉혹함도, 사랑하는 여동생의 절망도, 시어리즈는 가만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내 죄다."

증오에 찬 벨벳의 눈을.

"......아르토리우스!!"

팔을 베어 떨어트려져, 카노누시에게 먹히는 여동생의 절규를.
상냥함으로 가득했던, 그 나날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마음에, 자그마한 불꽃이 피었다.





"루즈로시브=하이=포에시......"

──청정을 위한 집행자.

중얼거린 《진명》의 의미를 곱씹는다.

"안녕, 아서......"

자신의 묘에 등을 돌리고서, 시어리즈는 달리기 시작한다. 향하는 곳은 타이타니아. 이번에야 말로 여동생을 구하고서, 날개를 해방한다. 《이치》라는 이름의 감옥<새장>에서.

나는, 내가 믿는 청정한 세계를 위해, 집행한다.





새의 지저귐에 벨벳은 눈을 떴다.

"......언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며, 지금 본 꿈을 되새긴다. 그리움과 분함이 동시에 올라온다.

"......어째서......"

이마를 누르고, 고개를 흔들며, 검은 감정을 흐트린다. 거기서 모아나 일행이 옥상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저기, 라이피세트의 《진명》은 뭐어야?"
"에, 내 진명.....?"
"알려줘! 그치만 성례에겐 진명이 있다고 했는데 아이젠은 자기의 진명도 동생의 진명도 안 알려줬는 걸."
"그랬, 네......"

순수하게 묻는 모아나에게, 라이피세트는 어쩐지 껄끄러움을 느껴, 대답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슬쩍 옆을 보니 비엔푸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 그치만 비엔푸의 진명이라면, 마길루가 알려줬어."
"어, 뭐야 뭐야?"
"퓌시=커스...... 《돼지 원숭이》라는 뜻이래."
"아하핫, 재밌어! 저 모자를 벗기면 돼지 같은 코를 하고 있을까? 모자 벗겨 볼까."

흥미진진한 모아나의 손이 모자를 벗기고 싶어서 움찔거리고 있다.

"어......어떠려나...... 그래도 멋대로 모자를 벗기면 안돼."
"에~, 그치만 보고 싶은데."
"돼지 원숭이라고 불려서 신경을 쓰는 걸지도 모르고, 그런 걸로 사람을 비웃으면 안돼."
"......알았어. 그럼 라이피세트의 진명을 알려줘!"
"저기, 그건......"
"괜찮잖아? 숨길 것도 아니잖아, 이름인 걸!"

라이피세트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거, 나도 듣고 싶은데."

옥상에 나타난 벨벳이 모아나의 편을 들었다.

"엘레노어만 알고 있는 건, 어쩐지 납득이 안 가는데?"
"맞아맞아, 둘만의 비밀이라니 의미심장하다구!"
"아, 아냐, 그런 게 아니야."

허둥대는 라이피세트는 비엔푸와 부딪친다. 졸던 범례는 뿅하고 날아오른다.

"말할게! 내, 내가 엘레노어랑 계약했을 때 받은 《진명》은──"
"라이피세트, 말해도 되나요푸. 알려줘도."
"에, 어째서......?"
"우리들 성례에게 있어 이성에게 진명을 전하는 건, 사랑의 고백과 같다구요푸~~"
"에에~~~~~~!! 그럼, 그건 말 못 해~~!"

귀를 새빨갛게 하고서 도망치는 라이피세트를, 모아나가 뒤쫓는다.

"숨기니까 되려 알고 싶어지네."
"그렇죠푸~~"

뻔뻔하게 웃는 비엔푸와 함께, 벨벳도 달리기 시작한다.

"알려달라구, 피."

가혹한 싸움의 나날, 찰나의 고요함.
푸른 하늘은 어디까지나 넓고, 맑았다.





벨벳이 라이피세트의 진명을 아는 건, 아직 뒤의 이야기.